[후기] 인도 달리트 HRDF 대표단 간담회

“12명의 꿈, 2,500명의 협동으로”…한살림과 인도 달리트 여성들이 함께 만든 유기농·에너지 자립의 길

2026년 6월 11일, 한국희망재단과 인도 HRDF(Human Resource Development Foundation: 달리트여성유기농협동조합 프로젝트를 진행한 현지 단체) 대표단이 한살림을 방문해 권옥자 상임대표님, 한살림햇빛발전협동조합 최혜영 이사장님과 지난 10여 년간의 유기농업, 태양광 에너지, 교육 지원 등 다양한 협력 성과를 돌아보고 향후 발전 방향을 논의했다.

이번 만남은 HRDF가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가 제정한 제 20회 생명의 신비상 장려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마련됐다. HRDF는 이번 장려상과 함께 3천만 원의 상금을 받았다. 한살림 역시 과거 세계유기농대상 상금 전액을 인도 달리트 공동체에 기부해 종자은행 설립을 지원했고, 2023년에는 한살림 임원진이 인도를 직접 방문해 종자은행과 태양광 발전시설을 둘러보며 협력 사업의 성과를 확인했다.

 

12명에서 2,500명으로 성장한 달리트 여성 협동조합

인도 대표단은 2012년 한살림을 방문해 한국의 유기농 생산과 소비 협동조합 모델을 배우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를 바탕으로 2014년 타밀나두주 칸치푸람 지역에서 달리트 여성 12명이 유기농 협동조합을 시작했다.

현재 행정구역 개편으로 주요 활동 지역은 첸칼파투 디스트릭으로 바뀌었으며, 협동조합은 52개 조직, 조합원 2,500명, 307헥타르(약 92만 평) 규모로 성장했다. 여성들은 유기농 채소와 환금성 작물을 재배하고, 판매되지 않은 농산물은 공동체에서 소비하며 건강한 먹거리와 지역 자립을 함께 실천하고 있다.

조합 가입은 달리트 여성 가운데 만 20세 이상 60세 미만으로 제한된다. 기존 조합원의 이탈이 거의 없어 신규 모집은 신중하게 진행하고 있으며, 무리한 규모 확대보다 안정적인 운영과 성공 모델 구축을 우선하고 있다.

 

생산에서 소비까지, 한살림 모델을 인도에

협동조합은 한살림 모델을 참고해 생산과 가공, 유통, 소비를 연결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현재는 조합원 2,500명 가운데 약 600명만 유통센터와 가공센터를 통해 판매에 참여하고 있으며, 취급 품목도 오크라, 가지, 래디시 등 10여 종에 머물고 있다. 차량은 한 대뿐이라 배송 비용 부담이 크고, 유통 수익률도 2~3% 수준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카스트 차별도 여전히 장벽이다. 지난해 확보했던 30개의 중간 유통업체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거래를 중단하면서 현재는 17개 업체만 남았다. 이에 협동조합은 아파트 직거래, 첸나이 소비자 배송, 꾸러미 사업 등 새로운 판매 방식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첸나이 도심에 소비자 그룹 2개를 조직할 계획이다. 행정적 부담을 고려해 당장은 비공식 조직으로 운영하고, 3년 정도 도시와 농촌의 교류를 통해 유기농 소비 문화를 정착시킨 뒤 협동조합 등록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SRM 대학과 협력해 온라인 판매 시스템도 구축 중이며, 현재 약 200명의 잠재 소비자를 확보했다. 자체 온라인 쇼핑몰과 직매장 설립도 추진하고 있으며, 부지를 확보해 1층은 매장, 2층은 협동조합 사무실로 활용할 계획이다.

달리트 공동체를 밝힌 태양광

이날 간담회에서는 한살림햇빛발전협동조합이 지원한 태양광 사업도 주요 성과로 소개됐다.

달리트 교육센터에 설치된 5kW 규모의 태양광 발전시설은 독일과 인도의 합작 기술로 제작됐으며, 설치 후 7~8년이 지난 지금도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설치 업체가 매년 무상 점검과 청소를 제공하는 등 공공성을 인정한 사회공헌 활동도 이어지고 있다.

이 교육센터는 달리트 공동체에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과거에는 불가촉천민이라는 이유로 회의 장소조차 빌리기 어려웠지만, 자체 교육센터를 마련한 이후 각종 교육과 회의, 공동체 활동의 중심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잦은 정전 속에서도 태양광 발전시설 덕분에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해졌다.

 

농업용 태양광과 에너지 협동조합을 꿈꾸다

인도 대표단은 앞으로 농업용 태양광 사업과 에너지 협동조합 설립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현재 타밀나두주에서는 농업용 전력이 하루 평균 3시간 정도만 공급되고, 공급 시간도 일정하지 않다. 반면 인근 대기업에는 전력과 물이 우선 공급되는 현실 속에서 농민들은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안으로 사용하는 디젤 발전기는 비용이 많이 들고 환경오염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여성 농부들이 직접 운전하거나 수리하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태양광을 활용한 관개 펌프 운영이 농업과 공동체를 유지하는 핵심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도 대표단은 장기적으로 태양광에너지협동조합을 설립해 농업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한국의 ‘햇빛소득 마을’과 같은 모델을 참고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마을 소득 증대까지 연결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한살림햇빛발전협동조합도 국내 에너지 협동조합 운영 경험과 기술 정보를 공유하며 협력을 이어갈 의사를 밝혔다.

 

교육과 돌봄으로 이어지는 공동체

달리트 공동체의 활동은 농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도에 의무교육 제도는 존재하지만, 공립학교는 교사 부족과 교재 미비, 열악한 시설, 식수 부족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달리트 가정의 아이들은 부모의 낮은 교육 수준과 빈곤으로 인해 아동노동에 노출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달리트 여성 공동체 조합원들의 소득 증가로 자녀들의 교육 여건은 개선되고 있지만, 수만 명에 이르는 지역 주민 전체를 지원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안정적인 수입원이 생기며 지역 공동체가 공부방 운영, 진로 상담, 정부 장학금 연계, 방과 후 교육과 음악·체육 활동 등을 지원하고, 달리트 청소년친환경동아리를 통해 나무 심기와 텃밭 가꾸기, 환경 보호 활동도 꾸준히 이어가는 점은 고무적이다.

 

함께 성장하는 협동의 미래

한살림과 한국희망재단, 인도 달리트 여성 공동체의 협력은 단순한 해외 원조 사업을 넘어 생산과 소비, 교육과 에너지, 환경과 공동체를 연결하는 장기적인 사회적경제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12명의 달리트 여성으로 시작한 작은 협동조합은 2,500명의 생산자 공동체로 성장했고, 종자은행과 교육센터, 태양광 발전시설, 온라인 판매망과 소비자 조직, 그리고 미래의 에너지 협동조합으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참석자들은 “지원을 받는 공동체를 넘어 독립적인 협력 주체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며, 앞으로도 한국과 인도의 시민들이 함께 배우고 연대하며 지속가능한 협동의 길을 만들어 가겠다는 뜻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