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소 옆 ‘영덕 대게’, 사서 드실 건가요?”
[에너진 칼럼, 2014-12-26] 지난 10월 9일, 삼척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조직한 주민 투표를 통해서 핵 발전 유치 신청을 철회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선거인 명부에 등록한 유권자 중 68%가 참여하고, 그 84.9%가 핵 발전 유치에 반대표를 던졌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한 어떤 선거보다도 참여율이 높은 주민 투표였다. 이는 핵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삼척 주민들의 승리이며, 한국의 미래를 구하는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논평한 바 있다.
삼척과 함께 또 다시 핵발전소의 악몽에 휩싸인 곳이 영덕이다. 영덕은 이미 2003년과 2005년에 ‘핵폐기장'(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건설 후보지로 고시되어 엄청난 내홍을 겪으면서, 이를 물리친 지역이다.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인 2010년 말, 영덕군의 전임 군수는 군의회의 동의를 얻었다는 명분을 내세워 신규 핵발전소를 유치한다는 신청을 했다. 이를 근거로 정부는 영덕을 삼척과 함께 신규 핵발전소 예정 부지로 고시를 했다.
그러나 2011년 3월, 일본으로부터 전해져 온 충격적인 소식이 주민들을 일깨웠다. 삼척 주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영덕 주민들도 후쿠시마 핵 사고를 통해 핵발전소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영덕 주민들은 2011년 6월,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조직을 꾸려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군수의 방해와 억압으로 반대 운동은 넓게 확산되지 못했지만, 이웃한 삼척 주민들의 주민 투표 운동과 승리는 용기를 불어넣었다.
지난 총선에 녹색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한 여성 농민이자 영덕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 위원장 박혜령 씨를 비롯한 30여 명의 주민들이 10월 6일 영덕 군청 앞에 모였다. 그들은 삼척 주민 투표를 환영하면서 영덕에서도 주민들의 의견을 새롭게 수렴할 것을 촉구하였다. 영덕의 농민들은 이에 앞서 9월 영덕군 의회에 의견서를 제출해 군민 전체를 대상으로 의견 수렴을 다시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전임 군수가 핵발전소 부지 해당 지역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의견 수렴을 했다지만, 핵발전소가 들어서면 받게 될 피해는 군민 전체가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영덕군의회는 새누리당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역 주민의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던 탓인지, 내년 1월부터 6개월간 ‘원전특위’를 구성·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원전특위는 군민들의 의견 수렴 방안에 대해서 논의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군민 의견 수렴 방법으로 삼척과 같은 주민 투표가 거론되고 있다.
지난 12월 5일 밤, 영덕의 한 건물 2층에서는 지역의 농민과 어민들이 모여들었다. 핵발전소 유치를 거부하는 삼척 반핵 단체 대표도 참석했다. ‘영덕·삼척 신규 핵발전소 백지화 연대회의’를 개최하고자 모인 것이다. 함께 핵발전소 예정 부지로 지정되었지만, 주민 투표를 통해서 먼저 이를 거부한 삼척 주민들이 영덕 주민들과 연대하기 위한 자리였다. 성원기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 공동대표는 영덕과 연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회의 자리에는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 대학 교수의 특별 발표도 있었다. 장 교수는 일본의 사례 분석을 통해서 핵발전소를 유치한 지역의 경제적 효과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건설 및 정비 기간의 잠시 동안을 제외하고는 경제 활성화 효과는 미비하고, 그마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지속적으로 낮아진다는 것이다. 그는 영덕 군민들이 핵발전소 유치 결정 과정에서 이런 일본의 사례를 충분히 참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나 한국수력원자력 측이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가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회의에 참여했던 영덕의 주민들은 핵발전소 건설이 지역 특산물의 평판을 떨어뜨리지 않을까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농민들은 최고 생산량을 자랑하는 자연산 송이의 판로가 막히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으며, 어민들은 브랜드 가치가 1조 원에 달한다는 영덕 대게가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또 ‘블루 로드’라 불리는 영덕 대게 공원에서 고래불해수욕장까지, 64.6km에 달하는 아름다운 해안 도보 여행 길도 매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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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기우만은 아니다. 회의에 참석한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가 소개한 것처럼, 영광 핵발전소 인근 수산물의 평판이 떨어져서 판매 부진을 경험한 바도 있다. 기존 특산물의 평판이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핵발전소 건설 사업과 지원금의 경제적 효과도 의심스럽다면, 대체 영덕 주민들이 핵발전소를 유치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영덕 주민들 스스로 그 이유를 찾아내야 할 숙제일 것이다. 영덕 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주민 투표가 실제 이뤄진다면, 영덕 주민들은 이 숙제를 어떻게 풀었는지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주민 투표를 성공적으로 진행한 삼척 주민들이 하나 같이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왜 전기를 많이 쓰는 서울에 핵발전소를 짓지 않고 삼척과 같은 외딴 지역에 핵발전소를 짓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혜택을 누리는 지역과 위험과 비용을 감내해야 하는 지역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런 ‘에너지 불평등’은 대규모 발전소와 송전탑이 들어선 거의 모든 지역에서 겪어 왔던 일들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영덕 주민들에게 주어진 숙제는 그들의 몫만은 아니다. 경제 성장과 물질적 풍요를 위해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전력 소비를 당연시 하면서도, 외딴 지역에서 건설되는 핵발전소로 피해를 받게 될 주민들의 반대 운동을 외면하는 것이 맞는 일일까. 지난 12월 초 삼척에서 지역 에너지 대안을 모색하는 한 토론회에서, 삼척의 한 교사는 서울과 경기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불평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고 하였다. 30여 년 동안 핵발전소를 반대하여 싸워 온 삼척 주민들에게는 정말로 절박하면서도 궁금한 질문이었다.
대도시의 시민들은 이에 대해서 어떤 대답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혹시 질문이 어려울 수도 있으니, 달리 질문해볼 수 있다.
“영덕에 핵발전소를 지으면, 그래도 영덕 대게를 사서 드실 겁니까?”
영덕에서 만든 핵 발전 전기도 풍족하게 쓰고, 영덕에서 잡히는 대게도 안심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