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진 칼럼]’미생’이 보여주지 않은 또 다른 ‘미생’ 이야기

 

에너지정치센터, 작성일 : 14-11-28 13:58

<미생>이 보여주지 않은 또 다른 ‘미생’ 이야기

[초록發光] 대우인터내셔널과 버마의 눈물

드라마 <미생>이 한창 인기를 끌고 있다. 회사라는 공간 안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이야기들을 통해서 회사원의 많은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등장인물의 좌충우돌이 왠지 열심히 사는 나의 모습처럼 느껴지면서 조금은 뿌듯하고 조금은 위로받는 느낌까지 들게 된다.

 
이러한 인기는 드라마의 무대인 종합상사에 대한 선망을 심어주기도 하고, 더불어 직접적으로 모티프가 된 기업의 이미지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겐 오히려 그것이 드라마를 보는 중간 중간 불편함과 마주해야만 했던 이유였다. 왜냐하면 많은 기업들이 그들의 성공을 위해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나의 불편함을 조금 덜어내기 위해 드라마 <미생>이 아닌 또 다른 ‘미생’의 이야기를 꺼내려한다.
 
이미 알려진 바대로 드라마 <미생>의 무대는 대우인터내셔널이라는 현실의 종합상사와 겹친다. 그러나 이번에 드라마가 인기를 끌기 전까지 대우인터내셔널을 들어본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외환 위기 이후 몰락한 대우그룹의 흔적 중 하나로 인식하는 이들은 있을지 모르겠다.)
 
반면 해외,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대우인터내셔널의 이름은 꽤 알려진 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대우인터내셔널과 한국가스공사가 참여한 컨소시엄은 2000년 미얀마 서부 해역 가스 개발을 위해 미얀마석유가스회사와 계약을 채결했다. 그리고 이어진 평가정 시추에서 미얀마 해상 쉐(Shew) 지역에서 가스층을 발견했다.
 
쉐 가스전은 한국 기업이 외국에서 발견한 가스전 중에 가장 큰 규모로 해외 에너지 자원 개발의 성공 사례로 손꼽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때부터 미얀마 지역 공동체와 주민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 시작 되었다.
 
당시 미얀마는 군부 독재 정권이 장악하고 있었고, 쉐 가스 개발 사업은 미얀마 정부의 지원 없이는 성공이 불가능한 사업이었다. 결국 대우인터내셔널과 한국가스공사는 자국민을 억압하는 독재 정권과 손을 잡게 되었고, 군부가 자행한 인권 유린에 대해서는 책임을 회피하거나 침묵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가스전 사업에는 많은 군인이 동원되었다. 해상 가스전 주변 어민들의 어업을 중단시키고, 중국으로 향하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기 위해 주민을 내 쫒았다. 지역 주민의 토지와 가축을 약탈하고 강간과 강제 노동, 폭행 등의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전해졌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성공적인 해외 자원 개발은 미얀마의 ‘군사화’를 심화 시켰고, 버마인들은 희생을 강요당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심지어 대우인터내셔널이 정부의 허가 없이 미얀마에 1600억 원대 포탄 제조 설비와 전략 물자 등을 수출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 군부의 무기상으로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처벌은 매우 가벼웠다. 드라마에서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선임이 나서 팀원의 비리를 밝혔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비리와 악습이 무역과 자원 개발 영역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지만 현실에서 드라마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미얀마 가스전 사업은 정부의 ‘해외 자원 개발 성공 불융자’를 활용한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다. 성공 불융자란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되 성공할 경우 원리금과 특별 부담금을 징수하고 실패하면 원리금 일부 또는 전부를 탕감해주는 제도다. 결국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민간 기업의 국제 도박의 노잣돈을 챙겨준 샘이다.
 
그러니 이러한 상황을 조장하고 방조한 정부와 기업은 미얀마에서 자행된, 그리고 지금도 진행 중인 비극의 결과에 대한 상당한 책임이 있다. (☞관련 기사 : “버마의 비극, 대우인터내셔널·가스공사 책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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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유사한 사례들이 많다. 제철기업 포스코는 (현실의 대우인터내셔널은 2010년부터 포스코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다.) 인도 오디샤(Odisha) 주에 일관제철소를 건설 중이다. 포스코는 800만 톤 규모의 제철소를 건설할 수 있는 부지 약 1123만9669제곱미터(약 340만 평)에 대한 법적 소유권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강제 이주, 토지 몰수 등이 인도 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추진되었고 이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무차별적인 폭력에 노출되었다.
 
민간 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11년 아름다운 섬으로 신혼부부의 발길을 잡는 필리핀 세부에서 한국전력이 200메가와트 대형 화력 발전소를 건설했다. 지역 주민은 이 사업이 실제 필요한 사업이 아니라 한국 기업과 필리핀 정부가 결탁하여 진행된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현지 주민은 기존의 화력발전소로 많은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추가적인 화력 발전소 건설은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한국전력은 지역 주민이 요구한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고, 환경 문제, 주민 보상 문제 등의 책임을 도외시 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대부분의 저개발 국가에서 벌어진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경제 성장이 시급한 국가들은 외국 기업의 투자를 간절히 원한다. 그리고 그들 역시 한국 정부나 한국 기업의 눈치를 보며 최대한 그들이 하는 일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그런데 아직 사회, 경제, 정치적인 시스템이 안정기에 도달하지 못한 저개발 국가의 경우 돕는다는 목적으로 권력을 이용하여 민중의 땅을 빼앗고, 강제 이주와 노동을 시키고 폭압적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죽이는 인권 유린의 형태로 발현되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한국 기업들도 이러한 상황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알지만 그것은 그들의 일, 혹은 그 나라의 일로 치부해 버린다. 더 이상 산업혁명 이전의 식민지는 존재하지 않지만 사실 21세기 자본을 통한 식민 통치는 계속 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당연한 행태쯤으로 넘겨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민간 기업을 감시하고 이들을 강제하기 위한 강력한 기구를 만들어야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다른 접근을 해보자.
 
얼마 전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와 한 매체가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공공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 국가 중 꼴찌를 기록했다. 이들은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에 한국인들의 가치관을 이유로 꼽았다. 한국은 ‘경쟁’, ‘성공’이 가장 중요한다고 생각한 반면, 공공성이 높은 국가들에게서 나온 ‘관용’, ‘연대’, ‘평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은 모두가 각자의 경쟁을 통해 성공해야한다고 믿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가 아니면 경쟁 대상이고 내가 아니면 성공의 걸림돌이 되는 세상이다. 이러한 가치관 속에서 한국 정부, 한국 기업이 자국의 발전과 기업의 이윤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당연시 된 것은 아닌가 고민해 본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다른 길을 생각하게 된다. 평등과 관용을 중심으로 한 연대를 이어가는 것이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밀양 할머니들의 손을 잡았듯, 농민과 노동자, 노동자와 환경, 환경과 여성으로 이어지는 연대는 씨실과 날실이 되어 사회를 변혁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연대가 동아시아로 아시아 전역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제 미생들의 공생을 위한 사회 전복이 필요하다.

 
/조보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기사 원문 http://www.enerpol.net/  에너진칼럼